[권유리 더뮤지컬 Special Interview] 연극 'THE WASP (말벌)' 예측할 수 없는
연극 'THE WASP (말벌)'는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고교 동창생 헤더와 카알라가 20년 만에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심리 스릴러다. 부유한 삶을 살지만 아이를 갖지 못해 내면이 무너져가는 헤더, 빈곤의 굴레 속에서 거친 생존을 이어가는 카알라. 정교하게 설계된 심리 서스펜스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를 통해 폭력과 트라우마, 계급 갈등과 권력 관계 등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영국 연극계가 주목하는 극작가 모건 로이드 말콤이 2015년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국내 초연 개막을 앞두고, 헤더 역의 김려원, 한지은, 이경미, 카알라 역의 권유리, 정우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권유리 & 정우연
'THE WASP'의 대본을 처음 받아 들고,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권유리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이 절대적이었어요. 두 사람의 심리 상태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작품은 앞으로도 쉽게 만날 수 없겠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죠. 이 시기에 이런 작품을 도전하지 않는다면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큰 결심을 하게 됐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을 배우라면 누구든 갈망하니까요.
정우연 우선 캐릭터 자체가 저한테 되게 귀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이 작품을 지금 하지 않으면, 이런 역할이 10년 내에 다시 나에게 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본상 카알라의 나이가 지금 저희의 나이대와 비슷한데, 이렇게 저와 맞아떨어지는 나이대의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인물이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권유리 (극 중 카알라의 행동들이) 카알라라는 인물이 생존을 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식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에 접근했어요. 카알라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기까지 그녀의 삶이 대체 어땠을지, 인간 권유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조금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해석한 카알라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 지점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죠. 또, 헤더와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계속 이동하는데, 그 팽팽함이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정우연 카알라는 되게 동물적인 인물이에요. 날 것의, 본능적인 인물이죠. 와일드한 감정과 거친 에너지를 분출하는 인물인데, 이런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신기한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저는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관객분들에게 정당성 있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그런데 카알라는 그 부분에서 참 쉽지 않은 인물이어서 고민이 많아요. 관객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야 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저의 가장 큰 숙제예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품입니다.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기를 바라시나요.
정우연 공연의 마지막, 모든 일이 끝난 후 보여지는 카알라의 모습이 저는 진정한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지막 암전이 되기까지 5초간의 시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 5초를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하는지가 관객분들이 객석을 나서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많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요. 또, 카알라가 생각하는 결말 이후 자신의 삶과, 인간 정우연이 생각하는 결말 이후 카알라의 삶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분들도 이 작품을 보고 각자 다 다른 생각을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에게 불편함을 안길 수 있는 작품일 것이고, 온전한 한 줄의 교훈을 주는 작품도 아닐 거예요. 하지만 작품이 끝난 후 관객분들이 얻어가실 수 있는 메시지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 정답은 없고, 인간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생이니까요.
권유리 세상에 정말 많은 종류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THE WASP'는 유니크한 색채를 가진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전개가 빠르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예요. 관객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들도 많고요. 꼭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보지 않으셔도 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셔도 충분합니다. 워낙 밀도가 높은 작품이라 집중해서 보시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를 거예요. (웃음)
2015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이 지금 여기 한국의 관객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우연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자면, 이 작품이 2015년에 한국에서 공연됐다면 지금과 같은 시선으로 읽히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현시대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조금은 파격적인 혹은 충격적인 대사와 장면이 극 중에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이런 지점을 축소하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오히려 더 드러내는 방향을 선택했죠. 그렇기에 여성만 알 수 있는 공감과 연대의 부분이 조금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저희가 이번에 공연을 올리면서 대본을 크게 각색하거나, 바꾼 부분은 없어요. 다만 2015년의 대본을 2026년 저희의 시각으로 풀어가면서, 텍스트에 담긴 감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작품이 이전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두 사람의 심리 싸움이라는 포멧, 선과 악 사이의 메시지 등 그간 주로 남성들에 의해 구현되었던 부분들이 여성의 입과 몸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관객분들도 그 지점에서 새로운 감각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권유리 앞에서 말했듯이 10년 전이었다면 좀 더 순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카알라와 헤더가 서로 피하고 싶어 하는 사이일지언정, 여성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관계성이 확실히 담겨 있고, 더 나아가 계층, 권력 등 사회적 이슈를 쿨하고 시원하게 내뱉는 작품이에요. 공연이 끝난 후에는 한 줄의 메시지를 남기는 게 아니라 관객분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와 시간을 남기는 작품이고요. 작품이 올라가기 좋은 때를 만난 것 같아요.
이토록 파격적인 심리 스릴러를 다루는 여성 2인극은 흔치 않습니다. 배우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를 듯한데요. 어떤 마음으로 'THE WASP'를 마주하고 있나요.
정우연 앞서 말했듯 제게 되게 귀한, 제가 그간 만나보지 못했던 인물과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삶이나 일에 있어서 조금은 지친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을 만난 후 카알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동안 한 적 없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면서 정우연의 생각의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친다는 마음도 많이 덜어졌어요.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정우연의 지평을 넓혀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여태까지 몰랐던, 불이 꺼져 있던 방에 조명 스위치가 살짝 켜진 느낌이 들어요.
권유리 여태까지 냈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 다른 이야기를 통해 관객분들과 마주하고, 교류하는 거잖아요. 덕분에 개개인의 서로 다른 삶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동안 활동하면서 카알라와 같은 이미지를 보여드린 적이 없고, 카알라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온 적이 없지만, 이번에 카알라라는 인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권유리의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요즘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면요.
권유리 어느 순간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해, 이런 행동은 조심해야 해’ 같은 것들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고민을 많이 덜어내도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아요.
정우연 나도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웃음) 배우 생활을 시작한 후로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런 고민이 많이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흐려졌지?’ 스스로 고민해 봤을 때, 우리가 점차 좋은 방향으로 걸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이 내려지더라고요. 결국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여배우’가 아니라 ‘배우’이니까요.
권유리 시대가 발전하는 데 저희 작품이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여성’으로 무언가를 규정 짓기보다는, 누구나 무대 위에서 이런 말과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시대이기를 바라요.
✱CREDIT: THE MUSICAL
연극 'THE WASP (말벌)'
2026. 03. 08 - 2026.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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