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그라치아 8월호 - 다시, 서현의 시간 : 마냥 차분하고 정적인 사람일 거라는 막연한 오해는 첫인사를 건네는 순간 이미 사라졌다. 납득할 때까지 직접 부딪치는 타입에 가까운 그녀는 사려 깊지만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드라마 <시간>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서현은 오롯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At This Moment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 아니까 매 순간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천천히 전진하는 서현의 오늘, 지금
Q: 드라마 '시간'의 예고편이 드디어 방영됐어요. 이제 드라마 속 캐릭터에 많이 이입된 상태인가요?
A: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좀 우울해요. 하하. 농담이고요. 아무래도 드라마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가 굉장히 슬프고 극적인 상황에 처하다 보니 영향을 받게 되더라고요. 단순한 슬픔 이상의 슬픔을 표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Q: 단순한 슬픔 이상의 슬픔은 어떻게 표현하는 건가요?
A: 슬픔에도 여러 상황과 종류가 있잖아요. 이번 역은 정말 슬픔의 깊이가 다르다 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저 역시 굉장히 고민스럽고 신경이 쓰여요. 감정 신을 소화하는 방식은 배우들마다 모두 다를 거예요. 촬영하는 동안 집에서 쉴 때조차도 완전히 그 인물로 살아가는 배우도 있고, 아니면 정말 '레드썬' 하듯 촬영 현장에서 바로 변신하는 분도 있고요. 저는 그 두 가지가 섞여야 베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성적으로는 제 자신을 놓으면 안 되지만 동시에 최대한 그 인물로 살아가는 게 맞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죠. 단순한 슬픔 그 이상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평상시에도 의식적으로 그 인물처럼 생각하려고 애쓰다 보니 기분이 좋을 때도 완전히 막 즐길 수가 없는 미묘한 상태에 놓인달까요.
Q: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최근 팬미팅을 했죠?
A: 너무 좋았어요. 제대로 흥을 발산했거든요. 하하. 저랑 함께하는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고요. '너는 이걸 꼭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하.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전 둘 다 해야 하나 봐요.
Q: 가수들은 무대에서만 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에너지가 따로 있다면서요.
A: 맞아요.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제 안에 있는 에너지가 모두 100% 나오는 것 같아요. 1%도 안 남고 모두 다요. 일부러 결심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예를 들어 좀 아프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도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싹 잊히죠. 근데 내려오면 또 아프고, 무대에선 한 번도 억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Q: 오래 활동한 만큼 세월을 함께 해온 팬들이 많잖아요. 나를 향해 조건 없는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 어떤 느낌인가요?
A: 그날도 팬들에게 이야기했는데 단순한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는 진작에 초월한 것 같아요. 저 또한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깊어졌고요. 감사함을 넘어 정말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랄까?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늘 함께해줬고, 또 그분들 덕분에 제가 빛이 나기도 했고요. 그분들도 그렇게 생각을 해주더라고요. 팬들의 인생에 제가, 소녀시대가 있었던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고 그런 시간들을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요. 이제 저희만의 추억이 된 거죠. 추억은 되게 강하잖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진 느낌이에요.
Q: 요즘은 연기자 모드이다 보니 무대가 그리웠을 것 같은데, 조금 충족이 됐겠네요.
A: 음, 근데 사실 전 연기를 하는 동안엔 또 신기하게 무대 생각이 전혀 안 나더라고요. 그러다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또 그렇게 흥이 나면서 행복하고요. 하하. 그런 과정을 통해 '아, 이걸 내가 너무 좋아했었지'란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돼요.
Q: 스케줄이 없을 때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뭐예요?
A: 요즘은 함께 사는 강아지 뽀뽀랑 산책하는 게 가장 큰 힐링 방법이에요.
Q: 잘 때 방에서 강아지도 함께 자요?
A: 그럼요. 엉덩이를 제 살에 꼭 붙이고 자요. 여름이라 좀 덥긴 한데 그래도 너무 행복해요. 사랑을 주면서 얻는 행복이 있잖아요. 온전한 사랑을 받고 주는 그런 경험이 정말 큰 위로가 되죠.
Q: 오래 함께했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서 다시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A: 너무 감사하게도 아버지가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그때는 아버지도 강아지를 예뻐하는 방법을 모르고 어색해했는데 그게 후회가 되셨나 봐요. 그리고 어머니와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버지가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셨대요. 그 말씀에 너무 감동받아서 용기를 낼 수 있었죠. 그래서 진짜 열심히, 시간이 안 되면 새벽에라도 산책을 시키고 있어요. 저도 이번에는 정말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을 주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Q: 요즘처럼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요?
A: 아무리 피곤해도, 단 30분이라도 집 근처 주변을 산책시키려고 하죠. 매일 함께 나가고 발도 씻겨주고 하니까 요즘은 절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강아지들도 정말 느껴지나 봐요.
Q: 강아지가 없던 시절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어요?
A: 어떤 스트레스를 받느냐에 따라 푸는 방법도 달라져요. 짜증날 땐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며 풀기도 하고, 뭔가 고민으로 인한 스트레스일 땐 하나씩 적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죠. 음악 들으며 산책하거나 날씨 좋을 때는 드라이브 가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요.
Q: 예전 인터뷰에서 미국 여행을 하며 직접 운전한 게 나름의 일탈이었다고 답한 내용이 기억나네요.
A: 아, 그때는 나름 매니저 없이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거든요. 근데 사실 일탈이라는 것도 다 기준이 다르잖아요. 저는 클럽 가고 술 마시고 이런 게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건 제가 즐겁지가 않고 굳이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니까요.
Q: 꼭 일탈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현재가 만족스럽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죠.
A: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 참 감사해요. 좋은 정서를 만들어주셔서, 하하.
Q: 감사한 마음과 별개로 이제 슬슬 독립하고 싶을 때인 것 같은데, 어때요?
A: 네, 외동이다 보니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서른 살에는 독립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했어요.
Q: 공식적인 촬영 일정 외에도 팬들이나 대중들 카메라에 찍히게 되는 일이 많잖아요. 그렇게 찍힌 나의 모습 가운데 특별히 인상 깊은 모습은 없었나요?
A: 아, 딱 생각나는 게 있어요. 팬사인회 할 때 팬들이 제 사진을 찍어주거든요. 그런데 그중 정말 눈에 행복함이 가득 찬 듯한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아, 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 좋더라고요. 무대 위의 표정들은 연습을 하기도 하고 콘셉트에 맞춰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도 하지만, 이건 정말 '리얼'이잖아요. '내가 진짜 행복할 땐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Q: 가끔 검색도 해보나요?
A: 그럼요. 모니터는 필수죠.
Q: 댓글 100개 중 99개가 칭찬이어도 나머지 하나가 악플이거나 안 좋은 말이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잖아요.
A: 아주 예전에, 활동 초반에는 그랬죠. 근데 지금은 좋은 말 하나 있으면 '어휴,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봐요. 하하. 특히 댓글 같은 건 너무 자주 보지 않으려 하고, 기본적으로 기대를 하지 않고 보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쉽게 던지는 말들에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나도 욱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사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편이에요.
Q: 내공이 쌓여서 그런지 긍정적으로 소화하네요.
A: 사실 노력해서 겨우 바뀐 거예요. 물론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요.
Q: 생각이 많은 타입 같아 보이는데....
A: 많아요. 근데 저에게 득이 되는 생각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바꿨어요. 옛날에는 앞으로 이렇게 되려면 지금 좀 많이 힘들어도 목표를 위해 일단 하는 쪽이었거든요. 요즘은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너무 소중하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의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생각들을 하려고 노력하죠.
Q: 이런 변화들은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바뀌게 된 건가요?
A: 음,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이 쌓여서 이렇게 제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계기 하나가 절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 적은 없었어요.
Q: 소녀시대로 활동한 것만 해도 1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 활동해왔잖아요. 스스로 감독이 되어 서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다면 꼭 넣고 싶은 장면은 뭐예요?
A: 와,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아, 첫 데뷔 무대요! 그건 꼭 써야죠.
Q: 도쿄돔 공연에서 부른 '다시 만난 세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무대도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A: 음, 그거 부르기 되게 힘들었어요. 다들 눈물을 참느라고, 데뷔곡만 들으면 멤버 모두가 다 뭉클해지더라고요.
Q: 그리고 어느덧 서바이벌 프로그램마다 단골 미션곡이 되었더라고요.
A: 그러니까요. 많이들 하더라고요. 신기하고 고맙고 그래요. 저희 옛날 모습도 생각나고.
Q: 또 어떤 장면을 넣으면 좋을까요?
A: 아, 첫 콘서트. 저희의 꿈이었거든요. 너무 열심히 준비했고, 팬들에게도 첫 콘서트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커리어에 있어서도 큰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A: SM은 저에게 너무 좋은 곳이었지만, 오래 지켜봐온 사람들이 만들어준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직접 부딪쳐보니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느낌이랄까요. 여러 가지 경험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진짜 많이 배웠어요.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게 된 것 같아요.
Q: 늘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잖아요. 요즘은 어떤 지점들이 어려워요?
A: 글쎄요. 사람들이랄까? 여전히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예요. 사실 되게 사람을 믿으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 '무작정 믿을 수는 없구나'를 깨닫게 된 일들도 있었고, 그만큼 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커졌어요. 사람은 오래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친구건 동료건 두루두루 많이 만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게 됐어요. 진실한 친구 하나만 있어도 감사한 일 같아요.
Q: 연예인 모드일 때의 서현과 인간 서주현의 간극은 점점 줄어들고 있나요?
A: 네. 지금은 거의 똑같아진 것 같아요. 예전엔 좀 더 스스로를 컨트롤하려고 노력하고 더 절제하려 했는데, 저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니까 이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해요. 일할 때는 더 프로답게 그 일을 해내고 촬영이 끝난 후엔 좀 더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오려 하지만 결국 서현도 나고 서주현도 나니까요.
Q: 요즘 서현에게 가장 큰 화두는?
A: 화두는 당연히 연기죠. 진실된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커요.
Q: 진실된 연기가 뭘까요. 어렵네요.
A: 맞아요. 뭐랄까, 어떤 연기를 하면서 제 스스로 '이 인물이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떤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도 하고 계산도 하고 감독님 디렉션도 받고 제 생각까지 더해서 연기로 표현을 하는데 그 표현을 할 때만큼은 그 인물로서 하는 게 진짜인 것 같아요. 100% 몰입해서 장면 장면들을 만들고 싶은데 그게 정말 어렵네요.
Q: 들을수록 더 어려운 경지인데요?
A: 그렇죠? 하하. 근데 정말 그런 순간이 있어요. 제가 하면서도 느껴져요.
Q: 그 순간을 본인이 겪으면 만족감은 정말 크겠네요. 이미 그 느낌을 알아버렸군요.
A: 맞아요. 하하. 제가 그걸 이미 느껴버려서 그런지 이입되지 못하고 연기한 신은 제 스스로 너무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Q: 솔로 앨범도 생각하고 있죠?
A: 네. 지금은 연기를 더 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제 본업은 가주니까 늘 노래에 대한 열망은 간직하고 있죠. 이제는 모양이 좀 바뀌었으니 제가 하고 싶은 음악과 이야기들, 제 취향을 좀 더 많이 담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좀 거창하지만 인생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다면 뭘까요? 혹은 서현이라고 하면 이런 단어와 함께 떠올렸으면 좋겠다 싶은 것.
A: 음, 둘 다 공통된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행복이에요. 누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이 스스로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요.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그게 최고인 것 같아요. 물론 열심히 살지만 일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정말 모든 게 다 의미 있지만 제가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인 것 같아요. 그 행복을 어떻게 찾느냐, 만들어가느냐는 다 저한테 달려 있으니까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야죠.
Q: '시간'이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으니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서현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A: 지금! 정말 지금이에요. 저는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아요. 딱 지금에 집중하며 살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EDITOR 박소영
▪PHOTO 이영학